Saturday, August 22, 2020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기로 합의한다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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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28
김종인 위원장 ‘무릎 꿇기 사과’ 높이 평가해야
5공 국보위 참여 개인적 과거사 참회 담긴 듯
분단 기득권 세력 ‘전라도 빨갱이’ 프레임 유포
민정당 법통 승계한 통합당 변화 쉽지 않을 것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5·18 민주항쟁 추모탑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 꿇은 장면과 중요한 발언 내용은 알고 계시겠지만, 김종인 위원장의 발언 전체를 듣거나 본 분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무릎을 꿇기 전에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별로 길지 않습니다.
5월 영령과 광주 시민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980년 5월 17일 저는 대학연구실에 있었습니다. 그 이틀 전 학생들이 시위를 중단할 것이라는 발표를 듣고 밀려있는 강의 준비에 열중하던 중이었습니다. 광주에서 발포가 있었고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위법 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 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은 소극성 역시 작지 않은 잘못입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것 또한 유죄입니다. 신군부가 집권하고 만든 국보위에 저는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그 과정과 배경을 말씀드리며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상심에 빠진 광주 시민,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6·25 전쟁 당시 저는 북한군의 총칼에 할머니를 잃었습니다. 학살을 피해 밤마다 거처를 옮기며 지내야 했습니다. 바람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저는 쫓기는 자의 공포와 고립된 자의 좌절을 알고 있습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호남주민들이 겪었을 고립과 슬픔의 감정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입니다. 광주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바람과 행동에 저희 당은 더욱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저희 당의 일부 정치인들까지 그에 편승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의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입니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가운데 자신을 지배한 과거 제국주의 국가와 대등하게 어깨를 견주게 된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정의롭게 행동한 우리 국민의 땀과 눈물의 결실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지금 우리를 지탱하는 소중한 양대 기둥입니다. 어느 하나도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의 과정에 적지 않은 희생과 고통이 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상처로 남아 아직도 낡은 이념 대립을 계속하며 사회적 통합과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권력자의 진심 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는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여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습니다. 소위 참회와 반성이 오늘의 호남의 오랜 슬픔과 좌절을 쉬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5·18 민주 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부디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벌써 1백 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빌리 브란트의 충고를 기억합니다. 5·18 민주묘역에 잠들어있는 원혼의 명복을 빕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주화 유공자 여러분께도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2020년 8월 19일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김종인 위원장은 발언 도중에 목이 메고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종이를 넘기며 손을 벌벌 떨기도 했습니다. 미래통합당 대표의 5·18 공식 사과는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은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의 민정당 법통을 승계한 정당입니다. 1990년 노태우의 민정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5·18 가해자’입니다. 5·18 광주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8 구원자’입니다. 1983년 5·18 3주년을 맞아 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5·18 특별법을 제정해 5·18을 ‘광주 사태’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제자리를 찾아줬습니다. 미래통합당은 ‘5·18 가해자’의 법통과 ‘5·18 구원자’의 법통을 동시에 잇는 정당인 셈입니다. 정치적 환경이나 당 지도부에 따라 5·18에 대한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019년 자유한국당은 ‘5·18 퇴행’의 절정기였습니다. 5·18 당시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내려왔다고 주장하는 지만원 씨를 국회로 초청해 강연하도록 한 김진태 의원 기억하시지요?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한 김순례 의원의 5·18 망언 기억하시지요? “5·18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한 이종명 의원의 망언 기억하시지요? 그런데도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은 이들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황교안 대표 자신은 5·18을 “무슨 사태”라고 표현함으로써 역사의식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2019년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전 참석자들의 국민의례 모습. 맨 앞줄 왼쪽부터 김순례, 이종명 의원, 지만원씨. 공동 주최자인 김진태 의원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5·18 문제에 있어 우파가 물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019년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 전 참석자들의 국민의례 모습. 맨 앞줄 왼쪽부터 김순례, 이종명 의원, 지만원씨. 공동 주최자인 김진태 의원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5·18 문제에 있어 우파가 물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5·18에 대한 시각은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어떤 특별한 사건에 대한 논쟁의 수준을 뛰어넘는, 중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분단과 1950년 전쟁을 거치며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모두 ‘분단 기득권 세력’이 득세했습니다. 최고 권력자는 분단을 이용해 통치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정적들을 빨갱이나 종파 분자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남쪽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의 정체성도 분단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그 이후 출현한 노태우 김영삼 정부도 본질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은 자본 기득권 세력, 영남 패권주의와 결합해 우리나라의 ‘주류’(메인 스트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은 영남 패권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라도를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전라도는 1950년 한국전쟁 초기에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던 지역이라는 것이 핑계가 됐습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의 정적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것도 매우 유용한 핑계가 됐습니다. ‘전라도 빨갱이’ 프레임은 분단 기득권 세력, 자본 기득권 세력, 영남 패권주의 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수십 년 동안 유포됐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 광주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했다는 지만원 씨의 터무니 없는 주장이 바로 ‘전라도 빨갱이’ 프레임의 전형입니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이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유한국당 의원이나 당원, 지지자들 가운데 ‘전라도 빨갱이’ 프레임을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미래통합당 의원이나 당원, 지지자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래통합당 대표의 5·18 민주묘지 무릎 꿇기 사과가 그 자체로 파격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입니다. 따라서 김종인 위원장의 사과를 정치적 제스처로 헐뜯어서는 안 됩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개인 자격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미래통합당 대표 자격으로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높이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김종인 위원장 개인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입니다. 20대부터 할아버지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인 김병로는 전북 순창 사람입니다. 순창에 생가터가 있습니다. 전주 덕진공원에는 가인 김병로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은 ‘호남 사람’이 아닙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자신을 호남 사람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호남 연고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에게 “나는 호남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무안을 준 일이 여러 번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에 참여한 경력 때문에 호남 사람들의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김종인 위원장 자신은 국보위 참여 계기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2020)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육군 중령 계급장을 단 어느 군인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자신은 국보위 재무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보좌하는 사람인데 교수님을 재무분과 위원으로 모시려 한다고 말했다. 국보위라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만든 국가재건회의를 모방해 신군부가 만든 기구였다. 사실상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을 갖는 초헌법적인 기구였다. 국보위 의장은 최규하(당시 대통령)였지만 실권은 전두환이 갖고 있는 것도 박정희 때와 비슷했다. 무작정 안 가겠다고 하기에는 엄혹한 시국이었고, 도대체 일개 평교수에 불과한 나를 왜 재무분과 위원으로 지목했을까 의아해서 이유를 물으니 “부가가치세를 없애려고 하는 데 좀 도와달라”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이 군인들이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가가치세라는 사실을 알고 있구나, 그런 점에 있어서는 현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는 재무분과위원회 간사로 있던 이춘구 준장을 만난 얘기와 그들에게 호감을 갖게 된 대목이 이어집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이 무너진 후에 다시 쿠데타로 집권하는 세력이 등장하고 그들이 초법적인 국보위를 만들었지만, 그 기구가 나름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춘구 씨처럼 차분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줄 알았던 참모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마치 유행처럼 쿠데타가 일어났던 시대에 우리나라만 거의 유일하게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물론 성실한 국민들의 노력과 의지 덕분이지만, 쿠데타 중심 세력의 인적 자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그나마 진일보했던 측면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가요? 어쨌든 김종인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에 참여해 5공화국 출범에 기여한 사람입니다.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낸 사람입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사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사람입니다. 그가 5·18 민주묘지에서 사과하면서 울먹인 데는 자신의 이런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호남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종인 위원장 체제의 미래통합당은 지금 강령 개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이 7월 20일 발표한 강령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히 한 2‧28 대구 민주운동, 3‧8 대전 민주 의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항쟁, 5‧18 민주화 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 정신’을 이어간다.”
5·18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렇다면 5·18에 대한 미래통합당의 이러한 시각과 태도는 최종적인 것일까요? 분단 기득권 세력, 자본 기득권 세력, 영남 패권주의 세력이 수십 년 동안 유포한 ‘전라도 빨갱이’ 프레임을 미래통합당이 스스로 끊어낼 수 있을까요?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이제 다시는 5·18 망언을 하지 않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렇게 변화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5·18 사과는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총의도 아니고 이른바 보수 세력 전체의 뜻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5·18 사과 이후 후속 입법에 대해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당내 분위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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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보수 성향 신문에서는 김종인 위원장의 5·18 사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5·18 특별법 제정, 헌법 전문에 5·18 반영 등 무리하고 성급한 요구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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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겠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의 5·18 사과는 올바른 방향입니다. 이른바 보수 정당이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로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의 이런 의지와 행동을 미래통합당과 이른바 보수 세력 전체의 의지와 행동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종인 위원장이 영수회담을 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개헌을 하면 전문에 5·18 정신을 넣는다”고 합의하면 어떨까요? 그 정도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래도 앞으로 미래통합당 지도부가 바뀌더라도 5·18에 대한 시각과 태도를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제가 너무 순진한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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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23, 2020 at 08:1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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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기로 합의한다면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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